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(문단 편집) == 반응과 영향 == 국제사회에서는 많은 원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 2005년 2월까지 40억 달러의 국제구호성금이 국제연합에 전달되었다. 주요 선진국들의 지원내역을 보자면 대충 [[호주]](7억 6,500만 달러) [[독일]](6억 6,500만 달러) [[일본]](5억 달러) [[미국]](3억 5,000만 달러)이다. 일본이 상당 규모로 지원금을 보낸 것과는 달리 한국은 5천만~1억 5,000만 달러만 냈기 때문에 한국에서 남아시아 대지진에 대한 지원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.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이 [[1997년 외환 위기]]로 타격을 입고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았음을 감안하면 적은 돈을 보낸 건 아니다. [[한국]]에서는 [[금란교회]] [[김홍도(목사)|김홍도]] 목사의 망언[* [[세이셸]] 인구의 92%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"[[하나님]]을 믿지 않아서 받은 천벌"이라며 아주 좋아하고 심지어 죽은 유럽 기독교인 관광객들에게도 "잘 죽었다"는 [[고인드립]]까지 치다가 아랍과 동남아 나라들에게까지 대대적으로 알려져서 국제적인 [[개신교]] 혐오까지 부채질했다.]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파장[* [[리처드 도킨스]]도 저서인 [[만들어진 신]]에 이 사실을 거론하면서 "종교에 미치면 이렇게 된다."고 엄청 비판했다.]을 일으켰으며[* 이들에게 반박할 수 있는 자료로는 1755년 [[리스본 대지진]](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과 비슷한 규모)의 사례가 있다. 당시 성당에서 [[미사]]를 드리던 사람들이 지진으로 싸그리 몰살당했는데, 정작 사창가 지역은 [[리스본]] 내에서 피해를 안 입은 유일한 구역이었다. 그리고 이 사실은 당대 여러 지식인들로 하여금 [[기독교]]에 회의감을 품고 심지어 무신론자로 돌아서게 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.], [[쓰나미]]라는 용어 자체가 이때부터 알려지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(이전에는 해일, 지진해일 등으로 표현). 그야말로 남아시아 전역에서 일부 [[아프리카]]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영상자료들이 많은 편이지만 당시에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[* [[유튜브]]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의미한다. 유튜브는 다음해인 2005년에야 생겼다.]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뉴스 동영상을 찾기는 좀 어려운 편이다. [[한국]]에서는 당시까지만 해도 쓰나미가 생소한 말이라 '지진해일'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기 때문에 당시 뉴스를 찾으려면 지진해일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야 찾기 쉽다. 지진해일이라는 용어도 이 사건 이후 쓰나미로 대체되었다. 피해를 입은 동남아 지역은 지역군벌이나 종교적 극단주의 세력이 반군을 형성하여 정치적으로 복잡했다.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쓰나미는 이런 정치적 상황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.[* 공공기관의 소실로 인한 반군세력의 득세나 반군세력의 쇠퇴 등이 있다.] 쓰나미 진앙지 바로 옆인 인도네시아 [[아체]] 주의 경우 주도 반다아체를 포함한 주 전역이 쓰나미에 막대한 피해를 입는 바람에 중앙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받는 조건으로 독립운동을 중단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